소장하고 싶은 영화의 리스트에 이 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독일과 헝가리의 합작 영화 글루미 선데이다. 글루미 선데이만의 독특한 아우라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일 것이다. 지금의 상식과 가치관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지만 주인공 세 사람이 갖는 자유로운 관계와 그 안에서 피어나는 휴머니즘이 인상적이었다. 역사적인 상황과 관련해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나치의 잔혹함, 비열함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진한 유럽 영화의 색채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한국에서는 무려 3번을 재개봉했다고 한다. 평생을 악인에게 복수하기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주인공의 운명이 처연하지만, 어쨌든 복수에 성공하는 결말이기 때문에 관객도 조금은 위안을 얻는다.
시대 상황의 덫에 걸린 청춘들
영화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레스토랑 '쟈보'에 귀빈들이 모인 가운데 시작한다. 개업 80주년을 맞아 특별한 메뉴가 서빙되고 연주되는 메인 테마는 '글루미 선데이'다. 식당 안 비치된 미모의 여인의 사진을 보고 한 귀빈이 갑자기 쓰러져 사망한다. 60년 전, 한 식당에 매혹적인 여인 일로나가 살았고 그는 식당 주인 자보와 사귀는 사이였다. 새로 채용된 남자 피아니스트 안드라스에게 끌린 일로나는 그와 심상치 않은 관계로 발전한다. 두 사람이 신경 쓰였던 자보는 오히려 안드라스에게 친절을 베풀며 대인의 모습으로 대한다. 독일인 사진작가 한스는 일로나를 짝사랑한다. 끊임없는 구애에도 불구하고 일로나는 한스를 거절했다. 한편 자보와 안드라스, 일로나 세 사람은 자유연애를 하듯 아슬아슬한 삼각관계를 유지한다. 일로나는 안드라스와 사랑에 빠졌으나 이후 자보도 여전히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독특한 삼각관계가 계속되는 가운데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시대적 상황이 발발한다. 이 시대적 상황이 세 사람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안드라스가 일로나에게 선물한 곡인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철강기업의 차녀가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자 충격을 받은 안드라스는 레스토랑을 떠난다. 독일 나치를 대표하는 대령이 되어 돌아온 한스는 일로나와 자보를 도와줄 것처럼 하면서 그들을 배신하고 짓밟는다. 결국 안드라스는 세상을 떠나고, 수용소로 끌려간 자보 역시 같은 결말을 맞는다. 홀로 남은 일로나는 한스로 인해 생긴 아이를 키우며 식당을 운영한다.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노인이 된 한스가 식당을 다시 찾아왔을 때 일로나는 그에게 독이 든 음식을 서빙하며 복수에 성공한다.
글루미 선데이의 또 다른 주역은 OST
이 영화의 또 다른 유명세는 OST에 있다. 영화 전체를 타고 흐르는 대표 주제곡이자 스토리 라인에도 깊이 관여되어있는 이 곡은 헝가리의 피아니스트인 세레시 레죄가 1933년에 발표한 곡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이하게도 이 곡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속에서도 결국 이 노래를 만들고 연주하던 안드라스가 결정적인 변수를 만든다. 전 세계에서 수십 명이 이 노래를 듣다가 영향을 받았고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연결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정말 그런 것인지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함부로 재단해서도 안될 것이다. 워낙 곡의 인기가 높고 대중적이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그만큼 온갖 사건 사고에 엮여서 해석되었던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한편, 영화는 노래에 얽힌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원작 소설 우울한 일요일의 노래를 각색해서 만든 작품이다. 아름다운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그저 빛나야 마땅한 젊은이들의 인생이 잔잔하게 굴곡져 가고 있었다. 정해진 운명이 시간이 되면 시작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차분한 톤으로 하나하나 보여준다. 이 차분한 톤이, 주인공들이 겪는 비극의 강도와 대비되면서 관객의 마음에 먹먹한 슬픔을 아로새긴다. 나 역시 영화가 주는 먹먹함에서 벗어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영화에 대한 단상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한스같은 빌런은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채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민폐를 가하는 캐릭터 말이다. 반면 자보는 한스와 대비되는 대인 중의 대인이다. 그의 자비로움과 단단한 인격은 과연 현실에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만큼 독보적이다. 비극에 대처하는 자세 역시 품위 있는데, 그가 일로나에게 남긴 유언 같은 말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남기는 울림이 있다. 어떤 상황이 된다 하더라도 끝까지 버티어내는 것이라고, 인간의 존엄성을 붙들고 끝까지 살아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인생이 던지는 고통 앞에 추해지지 않으려는 노력, 고통을 감내하며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내자던 자보의 표정이 앞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번 고통과 다음 고통 사이에 잠시 쉬는 순간을 행복이라 부른다고 하지 않나. 그러나 인생이 어떤 모양이든지, 우리는 삶을 부여받았고 살아내는 존재들이다. 자보처럼, 일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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