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장애인과 일반인의 사랑 이야기의 초점을 장애가 아닌 사랑에 맞추어 풀어냈다는 점에서 많은 호평을 받았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뭔가 특이한 면이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두 젊은이가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담백한 톤으로 보여주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의 시선이 아니라 똑같이 평범한 한 명의 인간으로 보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던 이유는, 이들이 보여주는 어느 연애담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제와 츠네오가 만났고 사랑했고 헤어졌다
조제의 원래 이름은 쿠미코다. 조제라는 이름은 쿠미코가 즐겨 읽던 소설에 나오는 이름인데, 츠네오가 이름을 물었을 때 쿠미코는 조제라고 답해버린다. 조제는 쿠미코가 추구하는 이상향이다. 조제는 하반신 장애로 움직임이 불편하다. 이 때문에 조제의 할머니가 유모차를 태워 외출을 할 때만 바깥세상을 보곤 한다. 츠네오는 근처 대학교에 재학하는 학생이다. 그는 여자 친구는 없었지만 섹스 파트너는 있다. 도박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적당히 때 묻은 채 살아가는 젊음이다. 우연히 만난 조제에게 마음이 끌리고, 그녀가 가진 장애는 오히려 독특한 매력처럼 여겨진다. 둘은 데이트를 시작한다. 호랑이를 무서워하던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보며 그녀의 한계를 연인과 함께 극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그녀는 츠네오와 함께 수족관에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무렵 조제를 조금씩 버거워하던 츠네오와의 동행은 뭔가 평탄치 못했고, 둘은 수족관에 가지 못한다. 이를 대신해 들른 수족관 콘셉트의 모텔에서 조제는 물고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마치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과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후 점차 소원해진 두 사람은 결국 이별을 한다. 츠네오는 조제의 장애가 버거웠다. 조제는 츠네오가 이전처럼 그녀를 사랑하지 않음을 받아들인다. 사랑했지만, 힘겨웠고, 힘이 부족했던 사랑 이야기가 끝난다. 이후 조제와 츠네오는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간다.
이별의 사유는 각자의 한계 때문이다
일본 로맨스 영화 특유의 아련함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일본 영화는 대체로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고 미장센을 강조하며 관조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역시 느린 호흡의 미장센을 위주로 전개하며 관객들이 의미를 곱씹게끔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언제 봐도, 지나간 날들을 소환해 내곤 한다. 영화를 처음 볼 때쯤의 나는 대학교 2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 만나던 사람과 싸우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며 지쳐가고 있었다. 만남의 이유가 곧 헤어짐의 사유가 되고, 그것이 그 사람의 한계라는 깨달음이 내 상황과 포개지며 아렸던 추억이 있다. 인간의 원초적 욕구 중 하나는 누군가와 소통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영혼에 내 영혼이 가 닿고, 함께 수족관에서 유영하고 싶은 소망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틀을 깨는 시도가 필수적이다. 최소한 금이라도 가게끔 해놔야 다음 기회에 진짜 깨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나는 지금도 사람이 자신의 좁은 시야와 울타리를 깨고 마음의 그릇을 넓혀가기 위해서는 연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회적인 포장지를 온전히 제거하는 것, 누군가와 마주 서서 각자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 상대방을 품어보려 애쓰는 것은 연애가 아니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 역시 그 사람과 수족관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지쳐서 도망친 것일지도 모른다. 조제의 장애가 츠네오에게는 사랑을 시작하는 이유가 되었지만, 결국 버거워지고 지치게 되는 이유도 조제의 장애였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다른 이유로 사랑에 빠지고, 같은 이유로 사랑이 끝난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점철되어 있는 이별의 울적한 아우라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생각의 어떤 지점에 이르러 위안을 받기도 했다. 한계는 무수한 만남과 경험을 거치며 조금씩 알게 모르게 극복되어왔다. 그것이 곧 한 사람의 성숙하는 과정이다. 그때 나의 한계는 지금의 한계와 종류가 다를 것이다. 삶의 묘미는 결국 자신의 한계를 끝없이 극복하고 확장해가는 내적 전투의 연장선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의 감상
영화를 보면서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데, 조제와 츠네오 두 사람 모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거다. 내가 이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을 무렵, 영화는 대중적인 인기가 상당히 높았다. 영화를 보게 된 것도 당시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강력하게 추천해서였다. 개봉은 2003년에 했지만 몇 년이 흘러서까지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가 식지 않았던 작품이다. 그때 우리나라는 싸이월드를 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관한 포스팅을 올려두고 있던 기억이 난다. 영화의 모든 장면을 통틀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별 후 츠네오의 씬이다. 두 사람이 조제의 집에서 마지막으로 헤어지고, 츠네오는 골목길을 빠져나온다. 골목길 입구에서 그는 다음 여자 친구 후보감으로 보이는 대학 후배 가나에와 만나 함께 걷는다. 덤덤한 표정으로 걸어가던 츠네오는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그는 보도의 난간을 붙잡더니 아무 설명 없이 오열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카메라는 길 건너 멀리에서 풀샷으로 잡는다. 츠네오 앞으로 지나가는 버스와 차들의 온갖 소음도 그대로 다 노출된다. 츠네오는 그렇게 한참을 운다. 아, 이렇게 영리한 카메라 워킹이라니! 갓 이별한 사람의 현실적인 모습 그 자체였다. 그렇다고 조제에게 돌아가고 싶다거나 이별을 후회하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헤어졌을 뿐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말하는 방식은 주로 이랬고, 나는 그것을 한참 동안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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