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카페를 보게 된 것은 대학원 수업에서였다. 드라마에 관한 수업이었고, 이 영화를 봐야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내용이 워낙 훌륭해 나의 걸작선에 무조건 포함시키게 되었다. 이 작품에 대해, 두 여성이 빚어낸 페미니즘 영화라고 보는 시각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굳이 페미니즘에 방점을 찍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엔 이 영화가 말하는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가 워낙 보편적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몽환적이고 나른하면서도 메시지 전달력이 좋다. 영화가 줄 수 있는 미장센의 매력을 가득 담은 이 영화를 모두에게 추천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치유와 소통의 영화
한 독일 국적의 여인이 남편과 여행 중 자동차 안에서 격렬하게 부부 싸움을 하는 듯하더니, 차에서 트렁크까지 챙겨 내려버린다. 그녀가 향하고 있는 곳은 미국 사막의 도로변에 자리 잡은 '바그다드 카페'다. 이곳은 장거리 트럭 운전수들이 잠깐씩 들러 쉬고 커피나 토스트 같은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고 초라한 간이음식점이다. 바그다드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은 흑인 여성으로 이름은 브렌다이다. 그녀는 무능한 남편과 매일 같이 싸움을 반복하고 혼자 힘겹게 말 안 듣는 아이들을 건사하며 근근이 가게를 운영해 가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은 내려놓은 지 오래된 듯한 표정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이 가게 근처에 거주하는 이웃들도 대부분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이다. 사회에서 소외당하다가 가게의 허드렛일을 돕고 푼돈을 얻으며 사는 원주민, 캠핑카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는 무명의 중년 화가, 오가는 손님들에게 타투를 해 주는 여성 등 힘없고 희망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어느 날 이곳에 다다른 독일 여성 야스민은 바그다드 카페에 머물면서 작은 변화의 바람을 불러오기 시작한다. 가게 주인 브렌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사무실의 먼지를 탈탈 털어 깨끗이 청소를 해둔다. 브렌다는 처음에 왜 손을 대냐고 화를 냈지만 점차 이런 야스민의 행동에 정이 들게 되고 조금씩 마음을 연다. 이곳의 이웃들과 브렌다의 아이들도 야스민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되고 브렌다도 점점 미소를 되찾는다. 가게가 깨끗해지면서 손님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 바그다드 카페는 사람들의 정이 오가는 훈훈한 허브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지만, 야스민이 비자 문제로 본국에 돌아가야 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위기를 맞는다. 야스민이 떠난 후 가게는 순식간에 예전으로 돌아가 버렸고 활기를 잃는다. 그러나 야스민이 다시 돌아오고, 가게는 예전의 화목함과 따스함을 되찾는다.
소리를 잘 다룬 작품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를 모티프로 한 동화 같은 이 영화는 1987년 개봉했다. 이 영화는 귀에 익은 삽입곡 'CALLING YOU'로도 유명하다. 다르지만 또 비슷한 두 여성을 기점으로 사막에서 꽃이 피듯 모든 갈등을 봉합하는 마법 같은 해피엔딩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가치는 8할 이상이 음악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유명한 BGM인 콜링 유는 영화의 초반에 야스민이 바그다드 카페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에서 처음 나온다. 몽환적이고 애잔하고 쓸쓸해지기도 하면서 역설적으로 따뜻하다. 영화의 배경인 사막과 잘 어우러지기도 한다. 혹자는 이 순간에 대해 '마술적인 나른함'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런데 이런 효과를 단순히 곡이 훌륭해서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바그다드 카페는 사실 음악, 즉 소리를 굉장히 잘 다루는 영화다. 어떤 측면에서는 뮤지컬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물의 감정이 소리로 표현되기도 한다. 야스민의 방에서 야스민과 브렌다의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 브렌다가 문을 쾅 열면서 분노를 표출한다. 브렌다가 야스민에게 역정을 내다가 결국 야스민이 '나는 자식이 없다'라고 말하자 미안해진 브렌다는 부드럽게 문을 닫는다. 문을 여닫는 소리로써 브렌다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행복한 장면 중 하나인 카페에서 공연하는 시퀀스는 한 편의 뮤지컬처럼 완성되면서, 음악을 도구로 사용하는 영화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두드러지는 여성주의
이 영화를 말할 때 여성주의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히 이 영화는 주체적인 여성을 다루고 있다. 영화에서 실질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여성이다. 주인공인 브렌다와 야스민의 남편들은 한심하거나 괴팍한 캐릭터다. 이웃들 중에서도 남성들은 대체로 한량이거나 생활력이 약한 인물이다. 물론 영화는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그리고 있지는 않으나,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서사가 강조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영화에서 유일하게 노출신을 감행하는 인물은 야스민이다. 영화는 이러한 야스민의 행위를 아름답게 묘사한다. 이때의 아름다움은 흔히 이야기되는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이다. 심지어 야스민은 우스갯소리로 서구권에서 가장 매력이 없는 여성이라고 일컬어지는 독일 여성이며 살집이나 덩치도 웬만한 남성들보다 육중하다. 야스민이 점점 마음을 열며 콕스의 누드모델이 되기까지 과정을 영화는 천천히 쌓아 올린다. 이 장면이 전혀 외설적이거나 흉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영화 속에서 야스민이 겹겹이 누적시켜 두었던 선행들이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여성성에 대한 입체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다. 또 미국인 흑인과 독일인의 이야기를 통해 두 세계의 화해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도 한다. 기분 좋은 힐링을 찾고 있다면 바그다드 카페 식구들이 선보이는 따뜻한 이 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어떨까 싶다. 이 영화는 기분전환이 필요한 날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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