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 2022. 9. 20. 01:50

노트르담의 꼽추 (1996) / 사회 정의에 물음을 던지다

반응형

콰지모도와-에스메랄다가-만우절-축제를-즐기고-있는-애니메이션-속-한-장면-캡쳐-사진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미디어에 받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미디어의 종류 또한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그중 영화, 드라마, 공연과 같은 문화 콘텐츠로부터 받는 영향은 그의 가치관과 적성, 나아가 진로를 결정해 버릴 만큼 막강한 힘을 갖는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미디어가 주었던 메시지와 거기서 시작한 고민들이 치열하게 뒤범벅되어 만들어진 산물일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나에게도 분명 영화가 삶의 이정표처럼 각인된 순간들이 존재한다. 마음속에만 있던 그 영화들을 이곳에 꺼내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소개

1996년도 개봉작인 이 옛날 영화를 첫 리뷰 작품으로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여름방학이던 어느 날, 영화관이라는 곳에 처음 가서 관람했던 영화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스크린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등장인물들의 대서사시, 화려한 색감, 훌륭한 배경음악, 주인공이 느끼는 어떤 억울하고 긴장되는 정서 등을 따라가며, 눈 깜박이는 시간도 아까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러닝타임 1시간 30분 정도의 애니메이션으로 당연히 전체관람가다. 다만, 디즈니 작품 중에서는 꽤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담은 영화로 꼽혀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주제가 함축하는 바를 깊이 있게 이해했을지는 의문이다. 역시나 전체 디즈니 작품 중에서도 흥행작과 비교해 흥행의 정도가 높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개봉 당시 박한 평가에 비해 주제의 진지함과 등장인물 간의 갈등과 이를 풀어나가는 해법이 세련되었던 덕분인지, 오늘까지도 사회 정의에 대해 말하는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와 정의에 대한 이야기

주인공 콰지모도는 노트르담 사원의 종지기로 일한다. 선천적 꼽추로 태어난 콰지모도는 알 수 없는 출생의 비밀과 함께 버림받은 채 성장했다. 그를 키워준 프랑스 파리의 영주 클로드 프롤로는 사실 콰지모도의 어머니였던 집시 여인을 죽이고 그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콰지모도를 돌보기 시작한 비밀을 갖고 있다. 20년 후, 청년으로 성장한 콰지모도는 어느 날 열린 축제 '만우제'에 몰래 참가하게 되고, 그곳에서 에스메랄다라는 아름다운 무희와 알게 된다. 콰지모도는 클로드 프롤로에 의해 가스 라이팅을 당하며 자라, 남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러나 축제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을 통해 조금씩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한다. 어쩌다 보니 만우제의 바보 왕으로 뽑힌 콰지모도는 주목을 받은 것 때문에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한다. 이후 콰지모도를 지지하는 군중의 분위기는 달라졌고, 조력자인 에스메랄다와 피버스의 도움을 받아 콰지모도는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원작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이라는 장편 소설에서 왔는데, 파리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쓰기도 하는 것처럼 이 콘텐츠 역시 파리의 노트르담이라는 원제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눈 여겨볼 부분

이 영화는 디즈니의 대다수 작품들이 그러하듯, 권선징악이라는 큰 틀의 주제를 담고 있다. 그러나 서사의 진행 과정에서 지금의 사회환경에 비추어 보아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과 왜곡된 편견 등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내가 마음속에서 매장시키고자 하는 콰지모도는 없는지, 아니면 내가 그저 숨기 위해 급급한 콰지모도는 아닌지, 에스메랄다를 표방하지만 실제로 프롤로와 같은 면모는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콰지모도의 구원이라는 주제를 사회적 레벨에서만 다루지 않고 더 나아가 신의 사랑, 죄와 구원이라는 종교적 색채까지 가미하여 확장했다는 점에서 심오하기까지 한 애니메이션이었다고 하겠다.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많은 영화들은 이렇게 묻곤 한다. '누가 장애인인가?' 혹은 '누가 괴물이고 누가 사람인가?' 대답을 요구하는 많은 영화들이 지금처럼 많이 나오기 이전에, 디즈니에서, 그것도 애니메이션 중에서 이러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분명 영화사 차원에서도 의미를 갖는 지점이다.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주인공과 여주인공 간의 사랑이 꽉 닫힌 결말이 아니었다 해도 충분히 고결하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랑이 곧 소유는 아니니까 말이다.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