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 2022. 9. 22. 20:00

죽은 시인의 사회 (1990) / 관습과 혁신이 충돌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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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디엠-그것은-현재를-즐기라는-말입니다-라고-말하고-있는-영화-속-한-학생의-모습을-캡쳐한-사진

관습과 혁신의 충돌은 인류 역사에서 늘 반복돼 왔다. 어느 분야, 어떤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래의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적폐와도 같은 구습들을 타파하자고 외치는 존재들은 보통 저항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고 평화로우며 잡음 없는 혁신이 어디 있었던가. 이 영화도 그러한 현실을 상당히 섬세하게 반영하였다. 다만, 끝까지 희망을 말했다. 한 교육자의 용기 있는 시도와 열정이 고고한 관습에 어떻게 균열을 내는지 침착하게 보여준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잡으라는 의미로 지금도 많은 이들이 즐겨 읊는 이 구절이 여기서 나왔다. 

관습에 맞선 참된 스승의 표본

죽은 시인의 사회는 윌튼 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문학 교사인 존 찰스 키팅 선생님이 과거 이 학교에 재학 시절 만들었던 연구회의 이름이다. 시인 연구회를 표방하지만 약간의 일탈을 감행하는 독특한 집단으로 이후 학교에서 제재를 받기도 했다. 윌튼 학교의 분위기는 관습적이고 학업 중심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 8 학군 중에서도 탑으로 꼽히는 고등학교가 아니었을까 싶다. 학생들은 부모와 학교의 강압적인 요구 아래 학업에 지쳐있다. 그런 학교에 부임한 키팅 선생님은 괴짜 같은 모습으로 수업에 임한다. 각각의 학생들이 가진 재능과 진짜 꿈에 주목하며 이들의 눌려있던 영혼이 소생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학생들 중 연극무대의 꿈이 있더 닐이라는 학생에게 일어난 비극을 통해 키팅 선생님과 죽은 시인의 사회는 좋지 못한 결말로 가는 듯했다. 강압적인 닐의 아버지가 심하게 꾸중하자 닐은 모든 의지를 포기하고 자살하고 만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책임지는 사람이 필요해지는 게 보통이고, 결국 키팅 선생님은 학교를 떠난다. 그러나 선생님이 떠나도 그가 남긴 유산은 학생들 마음속에 제대로 심겼고, 영화는 이들의 달라질 미래를 암시하며 끝이 난다.

학생들에게 학창 시절을 돌려주다

로빈 윌리엄스가 맡은 키팅 선생님은 바람직한 교사의 원형처럼 여겨지곤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본질 교육이라는 것이 있는데, 키팅 캐릭터가 추구했던 바가 바로 이런 방향이 아니었을까 싶다. 토드 앤더슨은 키팅의 카운터 파트와도 같은 학생 캐릭터로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의 소유자지만 키팅 선생님만의 방식으로 변화시킨다. 젊은 에단 호크가 역할을 맡아 그의 젊은 시절을 보는 재미도 있다. 닐 페리는 우등생이지만 그가 소망했던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비극을 맞는다. 이외에도 찰리 달튼, 리처드 카메론, 스티븐 믹스 등 키팅 선생과 시절을 함께 했던 다양한 캐릭터의 학생들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 키팅 선생의 영향을 받아 영화의 마지막 명장면을 함께 만든다. 척박해 보이는 땅에서도 여린 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희망 없어 보이는 입시지옥이지만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가진 개성과 순수한 꿈들이 출연 배우들의 연기를 만나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나 역시 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입장에서 영화를 곱씹어 보니 새롭게 보이는 부분도 많이 있는 것 같다. 25년 전 처음 영화를 감상할 때는 자신의 꿈을 대리 만족시켜주길 강요하는 나쁜 부모에 적대감을 품으며 봤다. 지금은, 그런 부모 밑에서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고 생을 포기한 닐에 대한 연민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만큼 마음이 아픈 아이였을 테니 말이다.

개인적인 이야기

죽은 시인의 사회는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준 선생님으로부터 추천받았다. 막 중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이었는데,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나더러 20살이 되기 전에 이 영화를 꼭 봤으면 한다고 강조하던 그녀의 비장한 얼굴이 말이다. 당시 선생님의 나이가 지금의 나 정도 되나 보다. 나는 그 말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영화를 찾아 감상했다. 한국에서 중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은 악명 높은 입시전쟁에 갓 들어섰다는 의미다. 이 영화를 추천하며 간접적으로나마 전하고 싶었던 어떤 간곡한 마음이 있었던 것일 테다. 나는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학업이 바빠졌다는 이유로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오랜만에 키팅 선생님을 접하니, 그때 그 선생님과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며 조금 아련해진다. 언젠가 나도 아이의 입시를 치르게 될 거다. 그 때 나는 어떤 부모, 어떤 멘토로 아이에게 기억될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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