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위하는 마음에 퇴장하는 것도 사랑일 수 있다.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을 때까지 인생을 함께하는 것도 사랑이지만, 제한된 환경에서 상대방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도 사랑이다. 모든 관계는 언젠가 끝이 난다. 아무리 사랑했던 관계도, 결국은 죽음으로써 헤어진다. 그러니 그 헤어짐을 최대한 정성껏 준비하는 것도 사랑의 한 단면일 수 있다. 함께한 시간의 길이와 깊이는 언제나 상대적인 것일 테니 말이다.
인간과 사랑에 빠진 저승사자
대기업을 이끄는 회장이자 두 딸을 두고 있는 빌은 어느 날 환청이 들린다. 65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던 가운데, 빌은 환청과 다가올 회사 합병 문제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둘째 딸 수잔은 회사의 임원과 감흥 없는 연애를 하는 중이다. 빌은 딸에게 진짜 사랑을 해보라고 조언하고, 잠시 들렀던 커피숍에서 묘하게 끌리는 남자와 만난다. 아쉬움을 안고 헤어지던 순간에 그 남자는 차에 치여 숨지고 빌에게는 저승사자가 찾아온다. 그러다가 빌의 딸 수잔을 발견한 저승사자는 사고 난 남자의 몸을 빌어 인간 세상으로 찾아온다. 빌의 사망 날짜를 미뤄주는 대신 인간세상을 구경시켜 달라는 것이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빌은 조 블랙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가족에게 소개하고, 그는 수잔과 점차 가까워진다. 수잔과 사귀고 있던 회사 중책 드류는 사실 합병을 통해 개인의 이익을 채우려던 자였고, 이것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수잔은 드류와 헤어진다. 서로에게 점점 깊이 빠지던 조와 수잔은 마음을 확인하고 빌은 처음으로 조에게 큰 목소리를 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빌은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저승사자인 그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끝이 필요하단 사실을 인지한 조는 빌의 생일날 아침 그는 수잔에게 이별을 고한다. 빌은 회사와 자신의 명예를 극적으로 되찾고 모두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조 블랙과 함께 떠난다. 불안감에 뒤쫓아간 그녀에게 커피숍에서 만난 남자의 모습으로 그가 돌아온다. 둘의 사랑이 시작됨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난다.
주제의식과 영상미가 돋보였던 수작
이 영화는 스토리와 영상, 연출미까지 최근에 나온 영화라도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인 죽음과 사랑을 한데 연결해서 깊이 있고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수많은 명대사와 명장면, 주연배우인 브래드 피트의 리즈시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영화는 높게 평가받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는 것은 당연히 누구나 괴로운 일일 것이다. 이 영화가 갖는 백미는,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이 보여주는 배려와 존중이다. 모든 등장인물은 공통적으로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절제와 배려심을 보여준다. 빌은 자신을 살려주면 안 되냐고 저승사자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삶이 마무리되고 있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조 블랙의 경우, 처음에는 수잔을 함께 데려가겠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그녀의 행복을 위해 본인의 마음을 접는다. 수잔은 조 블랙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처음엔 답답해했지만 그를 몰아세우거나 따지는 언행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 수잔은 또한 아버지의 죽음이 느껴져도, 그것에 저항하는데 에너지를 쓰지 않고, 오히려 웃는 얼굴로 작별하기 위해 애쓴다. 사실 현실 세계에서는 이와는 정 반대의 모습을 더 쉽게 볼 수 있다. 사람의 본능은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한데, 이 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추해진다. 반면 이 영화에는 욕망에 충실한 인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장인어른을 공격했던 첫째 사위조차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악인으로는 수잔의 전 애인인 드류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드류 역시 절제된 감정으로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인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요소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고도로 절제된 감정, 이타심, 타인에 대한 존중이 인간만의 품위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에게 수작으로 꼽히는 것도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품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 감상
이 영화는 무려 3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하지만 나는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 어쩌다가 이 영화를 고르게 되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비디오 대여점에서 이 영화를 고민 없이 집어 든 것은 기억이 난다. 이전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주제와 스토리 라인에 매혹되었다.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가 처음으로 각인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죽음과 사랑에 대한 여운으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다. 혹자는 영화의 설정 자체가 허무맹랑하다는 점, 러닝타임이 너무 길다는 점을 들어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데에 이만큼 효과적인 설정도 없다고 생각한다.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는 과정만을 압축적으로 담았다면 러닝타임을 줄일 수 있었겠지만, 영화는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도 욕심을 냈다. 훨씬 풍부한 영화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한편, 저승사자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주제는 이 영화가 나온 후에도 영화, 드라마, 문학 작품으로 수없이 변주되었다. 그만큼 매력적인 소재라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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